보통 진실이라는 한 마디로 뭉뚱거려 표현하지만, 진실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우선 물리적 진실이란 것이 있다. 누구나 확인을 할 수 있고 누구에게나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는 진실이다.
과학적으로 입증되거나 물리적인 수단으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은 일단 물리적 진실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물론 이것도 시공간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진실에 가장 가까운 것은 분명하다.
우리 믿음의 대부분은 사회적 진실
그것이 사실이냐 아니냐 여부는 중요하지가 않다. 실상이야 어떻든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믿느냐 안 믿느냐의 여부인 것이다.
우리들이 진실이라고 믿는 거의 모든 것은 사회적 진실이라 보아도 좋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의 대부분은 다들 그렇다고 하니 그렇다 여기는 것이지 일일이 확인하고 나서 진실이라고 판단한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는 심리적 진실이란 것이 있다. 이것은 자기만이 진실이라고 믿는 진실이다. 세상 사람이 뭐라고 해도 나만은 진실이라고 믿는 경우이다.
심리적 진실은 영혼, 유령, UFO, 전생. 임사체험 등 신비적이라고 불리는 현상과 관련된 경우가 많다. 이러한 심리적 진실은 주관적인 체험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심리적 진실이 사회적 진실로 확대되는 경우도 있다.
미국소에 대한 우려는 사회적 진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품고 있는 미국소에 대한 우려는 어떠한 진실에 근거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미국소가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미국소를 우려하는 것은 물리적 진실에 근거한 것은 물론 아니다. 광우병과 미국소를 직접 연구하거나 관련된 논문을 뒤져 보고 정독한 결과 생겨난 믿음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소가 위험하다고 믿는 것은 사회적 진실에 근거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적 진실을 갖게 만든 장본인은 정부, 방송, 신문이다. 미국소가 위험하다는 생각은 정부의 지금까지의 시책과 발표, 그리고 방송, 신문, 잡지의 수년간에 걸친 광우병과 미국소와 관련된 보도를 접한 결과 생겨난 믿음인 것이다.
불과 몇 개월 전, 정확히 말하면 정권이 바뀌기 전까지 정부는 미국소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경고뿐이 아니라 수입된 미국소에서 뼈 한 조각이 나와도 반입을 거부하는 식의 행동도 보여주었다. 정론지를 자처하는 신문들은 정부보다 한술 더 떴다. 정부에 더 강력하게 광우병과 미국소의 위험에 대처할 것을 주문하고 있었던 것이다. 방송 역시 다를 바 없었다. 이러한 것들을 통하여 우리는, 미국소가 위험하다는 사회적 진실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회적 진실은 얼마든지 부정될 수 있지만...
사회적 진실이란 여러 가지 통로를 통해 형성, 유지되지만 가장 중요한 통로는 언론일 수밖에 없다. 매일 접하는 것이 신문, 방송일 수밖에 없고 또 우리는 언론기관은 사실을 보도해야하고 또 보도하고 있다는 소박한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들은 신문, 방송에 난 것은 사실로 믿고 있고 또 그러한 믿음들이 사회적 진실을 구성하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사회적 진실은 언제든지 부정될 수 있다. 새로운 발견이나 과학적 성과로 사회적 진실은 얼마든지 부정될 수 있고 또 부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사회적 진실이 부정되기 위해서는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러한 근거 없이 사회적 진실이 하루 아침에 뒤바뀔 수는 없고 또 뒤바뀌지도 않는다. 미국소가 안전하다는 권위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연구 결과가 있지 않는 한 미국소가 위험하다는 우리의 사회적 진실이 바뀔 수는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지난 몇 달 사이에 미국소가 안전하다는 획기적인 발견이나 연구결과가 있었던 것일까? 다들 알다시피 그런 것은 전혀 없었다. 다만 정권이 바뀌었다는 사실 하나가 있었을 뿐이다. 정권이 바뀌었다는 것이 굳세게 믿어져 왔던 광우병과 미국소에 관한 사회적 진실을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몇몇 언론이 과거 자기들이 보도했던 내용을 괴담으로 격하시킨다고 해서 사회적 진실이 바뀔 수는 더 더욱 없는 노릇이다.
언론은 진실의 창조자가 아니다. 진실의 전달자일 뿐이다. 진실을 보도함으로써 사회적 진실을 구성하는 데에 일조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일 뿐 스스로 진실을 만들어 내려는 것은 주제 넘은 짓이다.
요즘 가장 황당한 것은 미국소가 위험하다는 사회적 진실을 구성하게 만들었던 장본인들이 그것을 부인하는 데에 가장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아무런 과학적인 근거나 사과 없이 자기들이 누차 강조해왔던 것들을 괴담이라 낮추어 부르고 있어 우리를 민망하게 만들기도 한다.
신문은 괴담을 전달하는 매체
1년 전에 보도했던 것이 지금은 괴담이라면, 오늘 보도하는 것 역시 1년 후면 괴담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결국 지금 우리가 보도하는 것은 괴담이니 믿지 마시오라는 말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이런 식이니 아무리 괴담이라 떠들어봐야 아무도 믿지 않는 것이다.
사실 "광우병 괴담"이라는 표현조차 정확한 것이 아니다. 괴담이란 출처 미상과 자발적인 전파를 가장 큰 특징으로 한다. 하지만 "광우병 괴담"이라 불리는 것들의 경우 출처 미상이기는 커녕 언론이라는 확실한 소스가 있다. 게다가 광우병괴담은 자발적인 전파라기 보다는 보도라는 형식으로 전파되었다,
지금 일부 신문이 말하고 싶은 내용에 맞는 표현은 "광우병 괴담"이 아니라 "광우병 데마"이다. 하지만 데마라는 표현을 쓰자면 선동하는 개인이나 집단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다들 잘 알고 있듯이 그러한 집단이야말로 바로 몇 달 전까지의 언론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데마" 대신에 "괴담"이라는 표현을 쓰는 듯하다. 최소한의 양심은 남아 있는 모양이다.
앞으로도 우리는 언론이 자기들이 심어주었던 사회적 진실을 스스로가 부정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수없이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마다 스트레스 받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뒷골이 땡기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