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한 한국사람이라면 자신의 점을 적어도 한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본인이 직접 보지는 않았더라도. 부모나 형제. 배우자를 통하여서라도 점을 본 경우는 많으리라. 개중에는 무슨 일만 있으면 점장이로 달려가는 중독자들도 있다.
그런데 점친 내용이 실제로 들어맞는 경우가 왕왕 있다. 신년신수에 올해는 교통사고 당할 우려가 있으니 조심을 하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로 교통사고를 당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쯤 되면 그 점장이는 대단히 용한 사람이라고 여길 것이며 사주팔자에는 무슨 근거가 있는 것이라고 확신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이러한 것은 사회심리학적으로 충분한 설명히 가능하다. 점을 맞는다고 생각하는 심리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혈액형별 성격론은 예언의 자기성취로 설명된다
우선 예언의 자기성취(self-fulfilling prophecy)라는 현상이 있다. 예언의 자기 성취란 애매한 정보에 바탕한 기대가 현실이 되어 되돌아오는 현상을 의미한다. 한 예로 자기자식을 매일 한심하다고 구박하면 결국은 한심한 사람이 되어 버리고. 반대로 영리하다고 칭찬을 하다보면 정말로 영리한 사람이 되는 것. 바로 우리 속담의 말이 씨가 된다는 것이 바로 예언의 자기성취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피그말리온 효과가 예언의 자기 성취 현상의 좋은 예이다.
사람은 어떠한 신념을 갖게 되면 그것에 부합하는 현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는 심리가 있다. 혈액형학을 믿는 사람은 사람의 성격은 혈액형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고 예단하는 경향이 있다.
마찬가지로 점을 믿는 사람이라면 신년초에 본 신수의 내용과 일치하는 현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는 심리가 있다. 이것을 예단(豫斷)의 함정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사람들은 이러한 기대나 예단에 근거하여 새로운 정보를 탐색하고 해석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것은 정보처리에서 보고 싶은 것만 보려하는 포지티브 피드백으로 이어진다. 즉 자신의 기대나 생각에 부합하는 정보는 받아들인다. 반면 처음 정보에 부정적인 네가티브 피드백 정보는 철저하게 무시된다. 부합하는 사례만이 수집되어 기억되며 부합하지 않는 사례는 완전히 망각된다.
혼기를 앞둔 처녀가 올해는 결혼할 운세이고 3월경에는 배우자감과 마주칠 것이라고 점장이로부터 들었다 치자. 이 여성이 점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이야기는 머릿속에 강력히 기억될 것이고 3월달을 은근히 기다리게 된다. 그러다 만일 3월달에 어떤 남성을 소개받게 된다면 이 사람이 내 배우자감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설사 옛날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타입의 남자라고 하더라도 이 사람이 나의 소울메이트인가 하여 그 남성에 특별한 호감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점에 나타난 대로 올해 안에 결혼하게 될 가능성은 100%에 달하게 된다. 이것은 점이 맞은 것이 아니라 점의 내용대로 기대하고 또 그 기대를 받아들여 거기에 부합하는 대로 행동을 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혈액형학도 마찬가지이다. 가령 B라는 사람을 소개받았다고 치자. 이런 저런 말을 나누다보니 B의 혈액형은 A형이었다. 만일 당신이 혈액형학을 믿는 사람이라면 평소 갖고 있던 A 형의 이미지로 B를 해석하려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A형의 성격에 부합하는 B의 성격은 잘 기억되지만 혈액형 A형의 성격에 맞지 않는 B의 행동은 무시되어 전혀 기억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포지티브 피드백이다. 이 과정을 거쳐 혈액형학에는 근거가 있다는 확신이 점점 굳어져 가는 것이다.
혈액형별 성격론은 버남효과일 뿐
두 번째로는 버남(Barnum)효과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성격검사에서 누구에게나 들어맞는 해석을 사람들이 정확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말한다. 버남은 대규모의 서커스단을 조직한 미국의 유명한 흥행사로 “모든 사람에게 조금씩이라도 좋으니 무엇인가를( a little something for everyone)"이라는 모토하에 공연을 해 상당한 인기를 거둔 인물이다. 그의 공연의 모토를 따서 누구에게나 들어맞는 해석을 버남 타입이라 부르고 버남 타입이 사람들이 받아 들이는 것을 버남효과라 부른다.
다음의 문장은 심리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성격에 관한 것이다, 당신에게는 어느 정도 들어 맞을까?
“자기자신에 비판적이고 자신이 내린 결정에 불안을 느낄 때가 있다.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주기를 바라고 있고, 사교적으로 처신할 때도 있다. 그러나 내향적이고 수줍음을 타는 부분도 있다. 성격적으로는 약한 면도 있지만 다른 측면으로 보완하고 있다. 지금 이성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이 문장을 읽고 자기에게 들어맞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사실 이것은 심리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성격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가 “자기에게 맞는다”라고 느낄 수 있도록 씌어진 문장일 뿐이다.
점을 쳐 보면 점장이들이 하는 말의 상당 부분은 누구에게나 들어 맞을 것 같은 것들이 많다. 앞의 예에서 3월경의 배우자감을 마주치게 될 것이라는 말도 그렇다. 요즈음 같이 남녀 교제의 기회가 많은 세상에서 이 말이 들어맞지 않을 미혼여성이 얼마나 될까.
이 말은 점을 본 여성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여성에게도 맞을 수 있는 말이다. 이처럼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을 사람들이 정확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바로 버남 효과이다 특히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잘 믿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다양한 실험을 통하여 보고되었다.
우선 정보가 자기에게 좋은 내용일 때이다. 이 경우는 어찌 보면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어하는 것일 줄도 모른다.
둘째는 정보의 내용이 애매하고 추상적일 때이다. 이러한 경우 어떠한 해석도 가능하니 사람들은 자기 좋은 쪽으로 해석해가면서 믿고 싶어하기 마련이다. 이런 까닭에 모든 예언은 애매하고 추상적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것이다.
셋째는 정보 제공자의 지위나 평판. 전문성이 높을 때이다. 특히 성격검사에서는 임상가의 지위나 전문성이 높을 때 사람들이 믿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결국 점이 맞는다고 생각하는 케이스의 상당 부분은 예언의 자기성취과정과 바넘효과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물론 점을 봄으로써 심리적인 안정을 얻을 수 있는 등의 부수적인 효과는 있다. 사람이 어려운 처지에 빠지면 누구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좋아진다는 단 한마디가 큰 위안이 될 수 있다. 이런 식의 심리적인 안정을 위해서라든지 재미삼아 점을 보는 것이야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점이 미래를 맞춘다고 생각하면서 점 본 내용에 목을 매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고 착각의 소치일 것이다. 부적이나 굿에 거액을 들인다는 것은 더더욱 미련하다. 점이란 맞는 것보다 안 맞는 것들이 더 많다. 기억의 자기 중심성 때문에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을 기억하고 있어서 점이 맞는 듯이 보이는 경우가 많을 뿐이다.
사람의 성격 특성을 나타내는 말에는 5백 55가지가 있을 정도로 사람의 성격이란 다양하다. 그리고 사람들의 성격이란 항상 일관적인 것이 아니다. 사람의 성격이 나타나는 것도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으니 어떤 경우는 서로 모순되기까지도 한다. 이것은 혈액형 성격론에 나타나는 모든 혈액형의 성격 특성을 누구나 다 조금씩은 갖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얼핏 보면 혈액형별 성격이 맞는 것같이 보일 수밖에 없고 또 이것이 혈액형이 근거가 있다고 사람들이 믿는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혈액형 성격론은 버남효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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