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일본에서는 “친학(親學)에 대한 긴급제언”을 두고 상당한 논란이 벌어졌었다.
친학이란 부모의 학(學)이란 말로, 부모가 아이들을 기를 때 마땅히 알아두어야 할 것을 배우는 것을 말한다.
총리 직속의 교육개혁 자문기관인 교육재생회의가 발표한 11개항의 친학 제언의 내용을 살펴 보면 시시콜콜하기 짝이 없다.
제언에는 "아기에게는 자장가를 불러 주고, 모유를 먹이라", "수유할 때는 TV를 켜지 말라", "아버지도 학교 학부모회(PTA)에 참여하라"라는 식의 자녀교육에 필수적인 8가지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아울러 지방자치단체와 기업에는 “친학강좌 개설”과 놀이터 확보, 수유시간 보장 등의 3가지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 본다면 정부가 이런 것까지 간섭하고 나서야 하느냐는 의문이 들 정도로 구체적이고 어찌보면 사소하다.
일본에서도 국가가 그런 것까지 간섭하느냐는 의견으로부터 친학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이 피로되었다.
왜 정부까지 나서야 했을까?
왜 지금에 와서 일견 사소하게 보이는 주문까지 국가가 나서서 해야만 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일본 나름대로의 깊은 속사정이 있다. 지금 일본 사회는 부모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부모 노릇을 하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전통적인 양육관은 “부모가 없어도 아이들은 자란다”라는 것이었다. 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나더라도 아이들은 나름대로 잘 자라기 마련이라고 보고 있었다. 이것이 지금은 완전히 바뀌었다. 지금은 "부모가 있어도 아이들은 잘 못 자란다”라는 인식이 일본사회에 지배적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양육에 대한 관점이 180도 바뀌게 된 것은 가정의 교육력 저하 때문이다.
나고야시가 작년 시민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시정 앙케이트에서는 84.5%가 가정의 교육력이 저하하고 있다고 응답해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그 이유를 물어 보았더니 41.4%가 과보호하는 부모가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이러한 가정 교육력의 저하는 아동학대와 과보호라는 두가지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아이들을 길러볼 기회가 전혀 없어 아이들을 어떻게 길러야할지를 도무지 모르기 때문에 비롯되는 현상이다. 2005년 전국의 아동상담소에 접수된 상담건수가 1만8천여건에 달하고 있을 정도로 아동학대는 일본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자리잡았다. 경찰의 상담창구에서 받아들여진 수리건수도 1천8백61건으로 과거 10년간 무려 7.2배나 증가했다.
부모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아이들을 죽게 만드는 사건도 심심치 않게 터져 나오고 있다. 경찰백서의 소개된 무직의 여성(21)의 사례가 대표적인 케이스일 것이다. 이 여성은 2005년 10월 장녀(5개월)을 데리고 가출하여, 아이를 모텔에 방치한 채 자신은 호스트클럽을 다녀, 아이를 굶어죽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고추가루 먹여 아들 죽인 엄마
방치해서 죽게 만드는 경우가 아니라 아예 살해하는 사건까지 발생하고 있다. 2007년 6월 4일 냉장고 안의 고기를 마음대로 건드렸다는 이유로 네 살난 아들의 얼굴을 때리고, 복도에 파자마차림으로 방치해둔 혐의로 미츠나카(光中,31)라는 여성이 체포되었다.
미츠나까 용의자는 6월 3일 오후 1시40분경, “아이가 숨을 쉬지 않는다”고 119에 신고했다. 아이는 곧바로 병원으로 옯겨졌지만 오후 3시 조금 넘어 사망했다. 다량의 물과 고춧가루를 마셔 이물흡인에 의한 질식으로 사망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소방서원이 도착했을 때, 아이는 팬티만 입은 상태였으며 온 몸이 물에 젖어 있었다. 해부결과 아이의 두부에서 피하출혈이 확인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의 감정결과 아이가 먹은 고추가루의 양은 4살짜리가 혼자서 먹을 수 있는 양이 아니라고 판단, 용의자가 억지로 아이에게 먹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6월 8일 미츠나카 용의자를 상해치사 혐의로 재체포했던 것이다.
아이들을 어떻게 양육시켜야하는지를 도대체 모르는 부모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사건들이다. 사실 일본의 상당수의 부모들은 아이들을 기르는 데에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경향은 조사로도 확인된다.
후생노동성이 5년마다 실시하고 있는 “전국가족아동조사”를 보면 “아이들 양육에 자신이 없다”라고 대답하는 세대가 89년 12.4%, 94년 14.7%, 99년 17.6%, 2004년 21.4%로 계속 늘어나 2004년에는 5세대에 하나 꼴로 아이들 양육에 자신없어 하고 있었다.
핵가족화가 심화되고 아이들을 하나만 낳는 소자화(少子化)현상이 두드러지게 되면서 지금 아이들은 물론 어른조차도 “아이들을 기른다”는 것을 체험할 기회가 점점 감소해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가정교육력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까닭에 일본에서는 중고생을 대상으로 부모의 역할과 양육을 체험시키는 “친학습프로그램”이 다수 실시되고 있고, 이러한 프로그램을 초등학생에게까지 확대시킬 예정이라고 한다.
버려지기 위해서 아이들이 태어난 것은 아니다
추석 며칠 전 쯤 MBC뉴스를 보다가 우리 사회도 이제 막장으로 치닫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했다. 그날 본 것은 “부모 있는 고아원의 아이들”이라는 제목의 보도였다. 보도에서는, 추석이지만 보고 싶어도 부모의 얼굴 한 번 볼 수 없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 82명 가운데 80명은 엄마나 아빠가 있는 아이들이라고 한다. 하지만, 추석을 하루 앞둔 그날 부모를 만난 아이는 고작 8명뿐이라는 것이다. 부모를 올해만 못 만나는 것이 아니라 대개는 5, 6년간 소식이 없었다고 한다. 이 같은 사정은 다른 250개 시설도 마찬가지라고 보도는 전했다.
오죽하면 아이들을 보육원에 맡겨야 했을까. 그 사정과 심정을 모르는 것은 전혀 아니다. 한동안 투자심리를 연구하면서, 주식 때문에 망한 사람들을 수없이 보아왔다. 돈 때문에 사람이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가도 익히 보아왔다. 따라서 아이들을 보육원에 맡겨야 하는 부모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맡겨놓고 5, 6년 동안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은 심하다. 만나봐야 어쩔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탓이겠지만 그건 너무 부모 위주의 생각이다. 아이들의 생각은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지금 먹고 살기가 힘들다보니 “친학”이니 하는 것을 따질 계제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경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상황에서는 어떤 식으로라도 부모의 노릇이 무엇인지를 심각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다 잘못되면 수많은 아이들이 고아원으로 직행한다. 버리기 위해서 아이들을 낳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