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폐인의 심리 (1)

사회심리학 2007/03/14 16:34 posted by Rokea

  

다들 알듯이 인터넷 폐인이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인터넷을 하면서 보내는 사람을 가리킨다. 심한 경우는 하루 20시간 이상을 PC앞에서 보내는 사람도 있다. 이쯤되면 일상생활을 제대로 영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저 인터넷의, 인터넷에 의한, 인터넷을 위한 생활에 전념할 뿐이다.


인터넷 컨텐츠의 종류가 워낙 많다 보니 인터넷 폐인의 종류 역시 다양하다. 하지만 크게 나누어 3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 온라인게임 폐인이 있다. 밤을 꼬박 새워가며 온라인게임에만 매달리는 폐인들이다. 인터넷 폐인 가운데에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우리나라가 온라인게임 강국이 된 것은 이들의 덕이라고 할 수 있다. PC방이 지금처럼 널리 퍼진 것도 물론 이들의 덕이다. 온라인게임의 성공여부는 얼마나 많은 인터넷 폐인을 만들어내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두 번째로는 게시판 폐인들이 있다. 이것은 자기가 흥미를 느끼는 주제를 다루는 게시판에 하루 종일 접속을 해둔 채 올라오는 글에 댓글을 다는 댓글 놀이에 열중하는 사람들이다.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사람들 가운데에는 등수놀이를 즐기는 사람들도 꽤 많다.


마지막으로 프로그램 수집 폐인들이 있다. 자기가 관심을 갖고 있는 프로그램이나 데이터를 모조리 모으려는 사람들이다. 화상, mp3. 영화, 게임소프트웨어, 에물레이터 게임 등이 주된 관심영역이다. 이 가운데에서는 누드관련 화상을 모으는 스캔매니아들이 가장 유명하고 역사도 길다.


지금에야 P2P를 통해 원하는 것을 쉽게 모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인터넷 초창기만 해도 사정은 전혀 틀렸다. 한때 ftp를 통한 공유나 와레즈가 번창했던 것은 다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P2P를 통하여 돈벌이에 나서는 사람들이 많아 이 종류의 폐인들도 상당히 변질되었다고 볼 수 있다.


폐인의 원조는 유닉스 폐인


요즘 같은 뉘앙스의 폐인이란 말은 사실 일본에서 먼저 유행했었다. 90년대 초반 지금의 폐인과 같이 컴퓨터 앞에서 보내면서 다른 일상생활은 무시해버리는 사람들을 하이징(廢人의 일본식 발음)이라고 불렀고, 이 말이 매스컴을 타면서 시대어로 굳어버렸다.


그 때 폐인의 주류는 유닉스 폐인이었다. 유닉스란 윈도우 같은 컴퓨터운영체제를 말한다. 그전까지는 PC보다 훨씬 비싸고, 성능도 뛰어난 워크스테이션용의 운영체제로 사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PC의 성능이 좋아져가면서 PC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Mach, 386BSD, Linux 등이 개발되면서 유닉스 폐인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던 것이다.


예전의 PC용 유닉스는 지금과는 달리 설치 자체가 어려웠고, 설치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배워야 할 것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Vi, 쉘스크립트, TEX, Awk나 Sed 등의 스크립트 언어, Emacs..... 익혀야 할 것도 많고 더구나 자기에 맞는 설정을 마무리짓기 위해선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다보니 PC앞을 떠날 수 없었고 그 결과 폐인의 길로 접어들고 마는 것이다.


유닉스세계에 빠져들면 정말로 시간가는 줄 모른다. 다양한 명령어와 파이프와 리다이렉션의 우아함에 감탄해가면서 메인프레임과 윈도우즈의 멍청함을 욕하다보면 시간가는 줄 몰랐다. 노하우를 하나하나 마스터해갈 때의 성취감은 요즘 온라인게임에서 레벨이 오르거나, 대박아이템을 획득했을 때 느껴지는 그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사실 이 때의 유닉스 폐인이 있어서 지금과 같이 리눅스가 대중적으로 보급될 수 있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물론 그 때에도 머드폐인은 있었다. 머드란 지금의 바람의 나라, 라그나로크 같은 온라인게임의 전신으로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던 일종의 온라인게임이었다. 당시 친했던 일본인 박사과정학생이 있었다. 전공은 달랐지만 상당히 우수했던 학생이었는데 어느 날부터인지 잘 보이질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머드게임에 푹 빠져 버렸던 것.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학원강사로 나갔다는 소식을 한참 뒤에야 들었다. 한 개인의 일생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머드폐인의 세계란 무섭다.


 Q4와 모자이크


비교적 소수이지만 Q4폐인이란 것도 있었다. Q4란 Bmp, Gif, Jpg와 같은 그림파일의 일종이다. 일본사람들이 고안해낸 파일형식으로 16색으로 256색과 같은 효과를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 그림 형식이었다.


그림이란 말에서 바로 연상되듯이 Q4에는 누드사진을 다룬 것이 많았다. 누드사진도 보통 누드사진이 아니라, 가려야 할 데를 모조리 모자이크 처리한 것들이었다. 당시 일본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헤어누드조차 금지되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성기를 노출한 사진을 배포한다는 것은 꿈도 못 꾸었다. 다만 모자이크 처리된 누드사진의 배포는 법에 저촉되지 않았다. 법을 잘 지키는 일본사람에게 딱 맞는 누드사진 배포방법이었다.


가릴 것 다 가린 사진이 왜 인기가 있었느냐 하면 사실은 모자이크를 처리하는 기법과 프로그램이 공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자이크를 제거하는 것이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모자이크를 처리하는 기법이 다수 존재했기 때문이다.


대개의 사진에는 한 가지가 아니라 복수의 기법이 사용되기 마련이다. 퀴즈의 요소를 가미시켜 제거하는 재미를 느끼게 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초심자의 입장에서야 본다면  쓸데없는 친절이었지만...


초심자의 경우에는 이 처리가 간단치가 않았다. Q4 화상의 본산은 니프티(우리나라의 천리안에 해당됨)의 Q4 동호회였는데 여기서 제거방식을 묻는 메시지에 대한 답변은 금지되어 있었다. 다만 약간의 힌트가 주어질 뿐이다.


처음에야 보기는 봐야겠고 아무리 해도 제거는 안되니 미칠 노릇이지만 세상일이란 열심히 하다보면 실력도 늘게 마련인 법. 어느 정도 하다 보면 걸려진 모자이크를 보기만 해도 처리 방식이 척하고 떠오르게 된다. 제거방식이야 간단하다,


처리방식을 역순으로 풀면 되니까. 사실 이정도 수준이 되면 사진보다는 처리방식을 푸는 데에 더 흥미를 느끼게 된다. 사진 자체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스캔매니아들이 스캔한 사진 자체보다는 모으고 있는 시리즈의 결번을 메우려고 시리즈의 번호라는 숫자에 집착하게 되는 것처럼.


요즘 같이 무수정 화상이 범람하는 세상에서도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gmask니 emask니 하는 프로그램이 가끔 눈에 뜨인다. 아직도 그 짓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있나 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