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란 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지만 그것은 본질적으로 자기 지향적이다. 자기의 도덕적, 인격적 존엄을 자각하고 지키려는 것이 바로 명예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여 명성은 자기의 존엄에 대한 자각은 전혀 필요 없다. 다른 사람들의 존경과 승인만 있어도 충분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명예 있는 죽음이란 있을 수 있어도 명성 있는 죽음이란 말은 있을 수가 없다. 명예를 위하여 죽는 죽음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만, 명성을 위해 죽는 죽음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예는 타인의 승인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이 없이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려는 형식으로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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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을 죽여도 죄가 되지 않았다

명예를 이야기하면서 일본의 사무라이를 빼놓을 수는 없다. 사무라이, 특히 메이지유신을 전후한 무렵의 사무라이들은 명예를 지키는 것을 최대의 미덕으로 삼았다. 역사 소설가 시바료타로(司馬遼太郞)가 말했듯이 사무라이들은 명예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멋있게 죽을 수 있을까만을 생각하고 있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우리들로서는 대단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사무라이들은 조그만한 모욕에도 사람을 죽이거나 스스로의 배를 가르곤 했다. 니토베이나조(新渡戶稻造)는 “무사도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어느 마을 사람이 사무라이의 등에 벼룩이 있는 것을 보고 호의를 가지고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런데 그 무사는 벼룩은 짐승에게 기생하는 것이다. 고귀한 무사를 짐승 취급하다니 참을 수 없는 모욕이다”라고 너무나도 단순하고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그 마을 사람을 베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도 니토베는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믿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사무라이를 폄훼하기 위해서 누군가가 악의적으로 유포했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는 보통 사람들의 사무라이에 대한 생각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 정도로 극단적인 케이스는 아닐지라도 비슷한 일이 흔히 일어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참고로 무사계급은 키리수테고멘(切捨御免)이라고 하여 무례를 행한 양민을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평민한테 목을 베일 수는 없다

막부 타도의 선봉이었던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의 기병대(奇兵隊)는 평민출신의 지원자로 구성된 군대였다. 이들은 무진(戊辰)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는데 이것은 기병대의 전력이 우수했고 사기가 높았던 데에도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더 큰 이유로는 상대방의 사무라이들이 이들과 싸우는 것을 꺼려했다는 데에 있다.


사무라이들이 싸움을 꺼려한 것은 상대가 평민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오히려 평민에게 목을 베인다는 것은 너무나 굴욕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무라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참으로 독특한 멘탈리티이다. 우리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이 당시 사무라이의 멘탈리티로 본다면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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