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사회에는 모라토리엄(moratorium) 인간으로 넘쳐나고 있다. 모라토리엄 인간이란 일본 게이오 대학의 오코노키(小此木)교수가 “모라토리엄 인간의 시대”라는 책에서 소개하면서 유명해진 인간형이다.


모라토리엄이란 다들 잘 알고 있듯이 채무상환을 유예하는 기간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람에게서 모라토리엄 기간이란 자기의 정체성을 확립할 때까지 사회에 대한 기여를 유예해주는 기간을 의미한다. 기여라 말하니 거창하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빨리 취직해서 세금 좀 내주고, 하루라도 빨리 결혼해서 애를 낳아 장래의 납세자를 확보해달라는 이야기이다.


어쨌든 이러한 의미로 청년기까지는 합법적인 모라토리엄의 시기이다. 따라서 청년기가 사회적인 자아를 확립하기 위한 유예기간에 머무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유예기간이 끝나면 개인은 다양한 가능성 가운데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여 독립한 개체로서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며 살아가야 한다.


나이가 들어도 모라토리엄인간인 사람이 많아졌다

하지만 요즘은 청년기가 연장되어 언제까지나 모라토리엄 상태에 머무르는 청년층이 증가했다. 캥거루족같이 부모 품에 안겨 살아가는 젊은이들도 적지 않게 된 것이다. 더구나 요즘은 취직난시대이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는 무엇인가 해보려는 젊은이들조차 모라토리엄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자기가 원하는 직업을 선택할 수 없어 모라토리엄 인간이 되도록 강요당하는 것이다.


취직자리를 못 찾고 실의에 차있는 젊은이들이야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이미 직업과 가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까지 모라토리엄형인간으로 남아 있는 것이 문제이다.


모라토리엄형 인간의 공통적인 심리는 “지금의 나는 진짜 내가 아니다. 진짜 나는 --을 하고 있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힘만 드는 영업을 하고 있는 나는 진짜 내가 아니다. 나는 원래 외국기업에서 기획을 하고 있어야 한다”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모라토리엄 인간의 전형적인 심리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니 자기가 하는 일이나 현재의 자기의 모습에 만족을 할 수가 없다.


모라토리엄 인간은 사회에 대하여 당사자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항상 방관자로 남아 있으려 한다. 조직 ·집단 ·사회에 대한 귀속의식이 희박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기회만 있으면 전직을 하고 싶어 하고, 이민을 가고 싶어 한다. 결국 온 사회가 한탕해서 미국으로 뜨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그득 차버리고 말았다. 물론 이것은 지금 우리 사회가 강요한 면이 크다.


유산상속 지연이 모라토리움인간을 만든다


모라토리엄의 심리는 젊은이들에게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좀 있다고 하는 집의 나이 지긋한 자식들에게서도 흔히 보인다. 요즘은 죽기 전에 자식에게 유산을 남겨보아야 나중에 찬밥 신세가 될 뿐이라는 생각에서 유산 상속시기를 늦추는 부모들이 많다. 영악지다.


평균수명이 늘어난 탓에 부모와 자식이 같이 늙어간다. 유산을 바라는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부모보고 죽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나라야 효도 빼면 시체 아닌가? 그냥 기다릴 수밖에 없다. 


앞으로 목돈이 들어올 터이니 장래에 큰 부자인 것은 분명한데 지금은 아니다. 유산을 지금 받았다면 하고 싶은 일이 지천에 널려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지금의 나는 마땅히 내가 되어 있어야 할 내가 아니라고 느낄 수밖에 없다. 모라토리엄 인간의 전형이다.


 모라토리엄형 인간이란 한마디로 말해 가치체계가 제대로 확립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다. 가치란 나를 나답게 하는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개념인데 이것이 제대로 안되어 있으면 자기 정체성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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