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자란 단어의 유래

일본 2007/04/20 03:14 posted by Rokea

일본에서는 조폭들을 말할 때, 흔히들 야쿠자라고 부른다. 친근감있게 부를 때는 야쿠자의 "야"라는 앞 대가리에 짱(ちゃん)이나 상(さん)등의 호칭을 붙여, "얏짱(やっちゃん)'이나 '야상(やーさん)"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조폭들은 야쿠자라는 말을 대단히 싫어하는 모양이다. 조폭들은 야쿠자란 말 대신 협객이니 極道(고쿠도)라는 식의 그럴듯한 이름을 고집하려 든다.


야쿠자라는 말에서는 좀 모자른다거나 덜 떨어졌다는 이미지가 풍기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는 야쿠자라는 말 자체에서 비롯된 것은 결코 아니다. 야쿠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누적된 행실이 야쿠자라는 말의 이미지를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다. 지금부터 살펴보듯이 원래 야쿠자라는 말 자체는 전혀 나쁜 의미를 갖지 않았다.


야쿠자란 앉아서 일했던 사람들


야쿠자라는 말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이에 대한 설명은 각양각색이다. 가령 일본 위키피디아를 보면 야쿠자란 용어가 카루타라는 화투 비슷한 게임으로부터 유래한 듯 적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어거지로 갖다 붙힌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설명은 야쿠자를 한자로는 왜 "役座(역좌)"라고 써왔는지를 전혀 설명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役座라는 말은,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이 앉는 자리, 혹은 앉아서 어떤 역할을 했다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싸움만 일삼는 야쿠자들이 앉아서 할 일이 도대체 무엇이 있었을까? 사실 야쿠자들이 앉아서 할 일이래야  뻔하다. 공갈 아니면 도박이다. 초창기 야쿠자들이 한 일은 도박였다. 도박으로 손쉽게 큰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옛날에도 다름이 없었던 모양이다..


야쿠자들은 도박에 직접 참가하는 것이 아니라 평민들에게 도박을 위한 공간을 제공해주고, 도박장에서의 싸움을 막아주었다. 그에 대한 댓가로 개평을 뜯어 생활했다. 여기에서 야쿠자라는 말이 시작된 것이다.  야쿠자라는 말은 도박장에서 “역좌”라는 자리에 앉아 개평을 뜯어 생활하던 사람들을 총칭하는 말이었다.


사무라이에서 야쿠자로


전쟁이 나면 군인은 불어난다. 국가로서는 일단 전쟁에는 이기고 보아야 하니 앞뒤를 가를 겨를이 없다. 나중이야 어찌되었든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문제는 전쟁이 끝났을 때이다. 불어난 군인들에게 제대로 된 직업을 찾아주어서 정착시켜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는 않다.


일본은 잘 알다시피 기나긴 전국시대를 거쳤다. 세키가하라 전투, 토요토미 히데요시 멸망을 거쳐  도쿠카와가 일본을 평정하고 나니 늘어날 대로 늘어나 있는 무사, 하급부사인 足輕(아시카르)들이 문제였다. 먹여 살릴 길이 막막했던 것이다. 결국 대다수가 실업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실업자로 전락해버린 무사계층이 50만에 이르렀다니 그 때의 인구를 고려한다면 해결은 사실상 불가능했던 것이다. 막부는 무대책으로 일관했다. 죽든 살든 알아서 하라는 이야기였다. 농촌 출신들은 귀향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문제였다. 당장 갈 데가 없었다. 살기는 살아야 하겠으니 궁여지책으로 이들이 찾아간 곳이 바로 절이었다.  재워줄 방도 있겠다, 절밥 먹여주겠다, 이것이 아마 당시로서는 베스트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절밥 얻어 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허구한날 공밥을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절에 머무르는 무사들도 한둘이 아니었고 또 오랫동안 머무르다 보니 무슨 일인가 하기는 해야 했다. 눈치밥도 하루이틀이다. 싸움에 날을 지새우던 무사들이 농사를 지을 리는 만무하고 그렇다고 또 무엇을 만들 줄 아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장사인들 할 수 있겠는가. 할 줄 아는 것이라야 싸움과 공갈, 협박이니 이러한 재능을 살릴 수 있는 길은 도박 빼놓고는 없다.


결국 이들은 절에다 도박장을 개설해 평민들에게 도박을 시켰다. 그리고 거기서 개평을 뜯어내 생활을 유지했다. 애초에는 큰 돈을 벌겠다는 목적은 없었던 듯하다. 호구라도 이어가겠다는 절실함에서 도박장 개설이 시작된 듯하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도박에서의 개평을  절의 돈이라는 의미인 "寺錢"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절과 도박은 인연이 깊은 것이다.


결국 일본의 조직적인 도박과 조직폭력배는 절에서 유래한 셈이 된다. 지금 근엄한 낯을 하고 있는 일본 불교계로서는 드러내놓고 말하고 싶지 않은 치부라면 치부다. 야쿠자와 불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커플이기 때문이다. 머리를 짧게 깎는데에 비슷한 점이 있다면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야쿠자란 말이 카드게임에서 유래했다는 식의 황당한 설명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야쿠자와 불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커플


사실 무사들은 그 전에도 도박과는 인연이 깊었다. 전쟁이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영화에서 보듯이 벌판에서 떼로 붙어 서로 죽이고 살리는 대규모의 전투는 드물었다. 대개는 성밖에서 진을 치고 성을 함락시키 위해 장기전을 벌여야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 기다리는 시간이란게 대단히 무료할 수밖에 없다.


무사들은 이 무료한 시간을 약탈이나 자기들끼리의 도박으로 보내곤 했다. 도박을 하다가, 잃다보면 눈에 보이는 게 없는 법. 무사들은 도박에서 계속 깨지다보면 나중에는 자신의 칼이나 갑옷을 걸기도 했던 모양이다. 이것마저 다 털린 무사들이 문제였다.


아이로니칼한 이야기지만 전쟁터에서 도박으로 다 털렸던 무사일수록 용감했고, 공을 세웠다는 기록이 당시의 일화들을 모아놓았던 “塵塚物語”라는 책에 남아 있다고 한다.  전쟁터에서 무기와 갑옷 없이는 하루도 살아 남기 어렵다 . 그렇다고 동료로부터 뺏을 수도 없다. 돈이 없으니 산다는 것은 엄두도 못낸다. 남은 길이라곤 적을 죽여 빼앗는 것이다. 결국 도박으로 다 털린 무사들은 어쩔 수 없이 적을 기습해 칼과 갑옷을 빼앗곤 했다고 한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이니 용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도박과 인연이 깊었던 무사들이니, 호구지책으로 도박장을 개설했던 것은 너무나 당연했던 것이다.  절과 야쿠자, 이처럼 인연이란 전혀 엉뚱한 데에서  맺어지곤 한다. 그게 세상이다.

[홈으로]

'일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 변할까?  (6) 2011/09/09
메리지 블루(marriage blue)  (21) 2007/05/20
야쿠자란 단어의 유래  (0) 2007/04/20
일본, 엔카가 음악교과서에 실렸다  (0) 2007/03/31
올해 일본의 신입사원들은 데이트레이더형  (0) 2007/03/30
사무라이 상법  (0) 2007/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