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구조 해명은 약물 덕였다

약물과 의식 2007/04/25 17:47 posted by Rokea


우리 사회는 표면적으로 본다면 대단히 건강하다.  약물이란 것이 도저히 비집고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건실하다. 약물하면 모두가 질겁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낮 동안의 이야기일 뿐 밤이 되면 이야기가 전혀 틀려지지만...

이런 분위기여서인지, 약물에 관해 외국에서는 대단히 화제가 된 이야기들도 우리 사회에는 잘 소개가 되지를 않는다. 


약물이라는 것에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를 통하여 예술과 발명에 약물이 미친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환각을 일으키는 약물을 먹고 나서 위대한 예술작품을 탄생시키고 발견을 한 경우가 적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대표적인 예가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발견한 프란시스 크릭이다. 생물학에서 20세기 최대의 업적을 꼽으라하면 누구나 왓슨과 크릭이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발견한 것을 들 것이다. 그들은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53년 노벨상을 수상했으며 이들의 업적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분자생물학과 유전공학이 꽃피우지 못했다.


3팀이 경쟁했던 DNA구조 해명

제임스 왓슨은 수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15살에 시카고대학에 입학했고, 1950년 대학 졸업한 지 3년만에 인디애너 대학에서 동물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에 비해 크릭은 런던의 유니버시티 칼리지 출신으로 물리학에서 생물학으로 전공을 바꾼 사람이다.

크릭은 왓슨보다 12살이나 많았지만 학위도 없었고 경력도 신통치 않았다. 어찌보면 대조적인 두사람이지만,  캠브리지 대학의 캐번디시연구소에서 운명적으로  만나  의기투합하게 된다. 그들은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큰 감동을 받은 터였다.


왓슨과 크릭은 생물학과 물리학을 바탕으로 각종 데이터를 분석하며 DNA의 비밀을 밝혀나가기 시작했다. 과학자들은 이미 유전정보의 비밀은 DNA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문제는 DNA가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느냐였다.


당시 DNA구조 해명을 두고 3팀의 연구자들이 각축을 하고 있었다. 하나는 미국의 물리화학자 라이너스 폴링이었고 나머지 두 팀은 영국의 윌킨스와 프랭클린, 그리고 왓슨과 크릭이었다. 가장 뒤떨어진다고 평가받던 왓슨과 크릭이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DNA구조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실제 세포의 핵속에 있는 DNA가 어떤 모양으로 들어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X선 회절사진을 찍어야 한다. 왓슨과 크릭의 DNA구조 발견은 프랭클린의 X선 회절사진과 미국의 생화학자 에르빈 샤르가프가 밝힌 DNA의 화학조성에 관한 데이터에서 결정적인 힌트를 얻은 것으로 되어 있다. 왓슨과 크릭이 맥주집에서 술을 마시다 힌트를 얻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크릭은 LSD에 취해 있었다


2004년 크릭이 저 세상으로 가자 전혀 다른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크릭이 이중나선구조를 생각해낸 것은 LSD로 변성의식에 들어갔을 때라는 이야기였다. 사실 크릭이 동료 연구자들에게 이러한 말을 했다는 이야기는 생전부터 돌아다녔다. 크릭은 만약 누군가가 이러한 이야기를 기사화하면 고소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었다.
 
그가 죽은 후 메일 언 선데이(Mail On Sunday)에 “Nobel Prize genius Crick was high on LSD when he discovered the secret of life(생명의 비밀을 발견했을 때 노벨수상자인 천재 크릭은 LSD에 취해 있었다)”라는 기사가 실리면서 그의 LSD 체험은 기정사실화되었다. 기사를 요약하면 대개 다음과 같다(원문은 이곳 ).


크릭은 올더스 헉슬리를 애독하고 있었다. LSD체험을 쓴 헉슬리의 지각의 문(doors of perception)이나 천국과 지옥(Heaven and Hell)은 6,70년대 히피들의 성전이었다. 크릭은 대마초의 합법화를 목표로하는 소마라는 단체의 설립 멤버였고, 1967년에는 타임지에 마약합법화를 주장하는 기고를 하기도 했다. 케임브리지에 있던 미국의 작가 데이빗 솔로몬의 자택이 모임의 거점이었다. 솔로몬은 LSD의 교주 티모시 리어리의 친구이다


이 모임의 멤버들 가운데에는 켐브리지대학을 위시해 부근 대학에 근무하는 젊은 생화학자들이 많았다. 그 가운데에서 리차드 켐프가 저비용의  LSD 제조법을 개발하여 Solomon과 함께 비즈니스를 시작한다. 1973년에는 2백50만 파운드 상당의 LSD를 생산한다. 결국 1977년 관계자들이 체포된다. 생화학자 리차드 켐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 크릭이었다고 한다.


아야와스카를 먹으면 두마리의 뱀을 볼 때가 많다


LSD에 취하고 나서 이중나선 구조를 생각해냈을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아마존의 인디언들이 신으로 숭상하는 약물에 아야와스카가 있다. 이것은 DMT의 일종인데 대단히 강력한 환각작용을 일으킨다. 아야와스카를 먹으면 누구나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런데 사람들은 약물에 취하면 이상하게도 거대한 보아뱀을 자주 본다. 아야와스카를 경험한 사람들의 보고에 따르면 거대한 두 마리의 보아뱀이 서로 꼬인 채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을 보는 경우도 있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제레미 나비는 아야와스카가 보여주는 세계를 힌트로 하여 “우주뱀=DNA”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LSD에 취한 크릭이 서로 꼬인 채 또아리를 틀고 있는 뱀을 보았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이것이 이중나선구조의 발견으로 연결되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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