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나 방송을 보다 보면 “아니, 어떻게 이런 황당한 일이 일어날 수가 있지?”라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사건과 마주칠 때가 있다. 이번 조승희군 사건도 물론 그러한 사건 가운데 하나이지만 우리가 그 사건에 온정신이 팔려 있을 때, 일본에서도 황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미 보도를 통해 아는 사람도 많겠지만, 일본의 특급열차 안에서 벌어진 성폭행사건이다.


40명 가운데 누구 하나도 신고 안해

4월 22일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작년 8월 3일  도야마발 오사카행 특급열차 안에서 한 치한(36)이 옆자리에 앉은 여성(21·회사원)을 위협, 성추행 끝에 열차 화장실로 끌고가 30분간 성폭행을 했다는 것이다. 당시 열차 안에는 40명의 남녀 승객들이 있었지만 피해 여성이 끌려가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누구도 제지를 하지 않았을 뿐아니라 아예 신고조차 하질 않았다는 것이다.


치한과 여성이 앉았던 자리가 앞에서 3번째였고 또 앞쪽의 화장실로 갔기 때문에 뒤에 앉았던 사람들은 눈치를 전혀 못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 주위 사람들은 모를 수가 없다. 끌려가면서 여성이 울기까지 했다니 말이다.


더구나 일본 열차에는 대부분 차량 연결 부근에 신고 버저가 설치돼 있으며, 내부 화장실에도 만약의 경우에 대비한 버저가 설치돼 있다고 한다.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그냥 버저만 누르면 되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 대놓고 나서기는 힘들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신고는 할 수 있는 것이고, 사회는 그 정도를 요구할 뿐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지난해 벌어졌던 사건이 다른 사건으로 체포된 범인의 여죄를 추궁하는 과정에서 확인되었다는 점이다. 당시에는 그냥 넘어갔던 것이다. 이런 까닭에 또 다른 피해자가 있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혀를 찰 수밖에 없는 개탄스러운 사건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 사건을 보고 일본넘들은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생각한다면 당신은 쫌팽이이다.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사건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사건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발생해

지금은 까맣게 잊혀졌지만 96년 5월 5일 오전 1시 안산에서 발생한 주부피살 사건은 우리사회를 한때 충격에 빠뜨렸었다. 피해자는 친구가 운영하는 해장국집 일을 도와주고 귀가하던 30대의 여성이었다. 그 여성은 괴한의 습격을 받고 40여분간 살려 달라 비명을 외쳤다. 하지만 주민들의 철저한 외면으로 자기 집 앞 100m 떨어진 곳에서 사망하고 만다.


사고가 발생한 곳은 슈퍼와 다세대주택이 밀집한 골목이어 수많은 사람들이 여인의 비명을 들었을 터였다. 경찰에서 진술한 목격자만 해도 모두 3명이었으나 이들 모두 피해자가 범인의 발길에 차이며 끌려갈 때 이를 외면했다. 그뿐 아니라 신고조차 하질 않았다.


비명을 들은 일부 주민들은 폭행 장면을 문틈으로 지켜보기만 했을 뿐 여인을 돕기 위해 경찰에 신고하거나 밖으로 나온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피해자는 하의가 모두 벗겨진 채 숨졌으며 범인은 여성을 비닐로 덮어 공터 한 구석에 버려 놓고 유유히  달아났다.


이 사건이 보도되자 신문에는 우리사회의 시민의식을 개탄하는 사설이 줄을 이었다. 신문은 시민의식의 결여를 개탄햇다. 모두가 우리 사회의 비정함과 도덕적 불감증을 꾸짖고 있었다.


사건을 목격한 주민들이 신고를 외면한 것은 시민의식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시민의식의 높다는 선진국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일까? 대답은  이번 열차 성폭행사건에 보듯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시민의식이 가장 높다는 미국 역시 벌써 경험했던 종류의 사건이다. 바로 그 유명한 키티 제노비즈양 사건이다.


미국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던 키티 제노비즈양 사건

1964년 3월 13일 오전 3시 20분. 뉴욕시 교외의 아파트 앞길에서 키티 제노비즈라는 젊은 여성이 살해되었다. 술집에서 일을 마치고 귀가 중이던 그녀는 주차장을 막 나와 집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윈스톤 모즐리라는 남자의 습격을 받았다.“ 칼에 찔렸어요, 살려줘, 살려줘”라고 그녀가 비명을 지르자, 근처 집들의 불이 켜지며 창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에 놀란 범인은 일단 도망쳤다, 하지만 누군가 “그냥 둡시다”라고 소리치자, 창문은 다시 닫히고 불은 다시 꺼졌다. 주위가 조용해지자 범인은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그녀를 칼로 찔러댔다. 그녀의 비명이 밤공기를 가르자 다시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놀란 듯 범인은 차를 몰고 사라졌다. 그녀가 간신히 집에까지 기어갔을 때 사라진 줄 알았던 범인은 다시 나타났다.,


사건을 목격하면서 법룰상담까지 마친 목격자

그리곤 마치 즐기는 듯이 그녀를 칼로 찔러 결국은 절명시키고 말았다. 그 동안 그녀를 구하려는 사람은 물론 경찰에 신고한 사람조차 단 한명도 없었다. 경찰에 첫 신고가 들어 온 것은 그녀가 이미 사망한 이후였다. 이 목격자는 지붕위에서 사건이 벌어지는 것을 쭉 지켜보다 근처에 사는 노인집으로 들어가 신고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충격적인 것은 그 목격자는 노인에 전화연락을 의뢰하기 전에 법률고문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상담까지 했다는 것이다. 뒤에 질문을 받고는 “사건에 말려들고 싶지 않았다”라고 대답했다. 이 사건이 “뉴욕타임즈”에 보도되어 미국사회는 경악에 빠졌다. 뒤의 조사로 이 사건의 목격자는 모두 38몀에 달했다. 38명이나 목격했으면서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는 사실은 미국사회를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미국사회는 경악했다. 시민의식의 결여를 개탄했다. 그리고 사람이 많은 곳으로 도망가면 누군가가 도와준다는 통념이 무너진 것을 우려했다. 그러나 이러한 탄식과 개탄만으로는 무엇인가 부족했다. 왜 이러한 사태가 벌어졌는지, 왜 그토록 많은 사람이 신고조차 하질 않았는지를 체계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작업에 나섰던 사람이 라타네를 위시한 사회심리학자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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