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티양 사건이 일어나자, 여론은 대도시에 사는 현대인의 도덕붕괴, 비인간화, 무관심을 사건이 벌어지게 된 이유로 들었다. 안산사건 보도당시의 우리나라 언론과 판에 박은 듯한 반응이었다. 라타네와 그의 동료들은 우선 정말 미국사회가 그처럼 비정하게 되었는가를 조사하는 것으로부터 연구를 시작했다.


시민들은 결코 냉담하지 않았다

 라타네는 도시의 비정함이 수많은 사람을 방관자로 내보냈는지 여부를 검증하기 위하여 일련의 실험을 시작했다, 최초의 실험은 뉴욕거리에서 통행인들에게 간단한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시간이나 길을 묻는다든지, 차비를 빌려달라든지 하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실험 결과 뉴욕시민들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냉담하기만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정당한 이유만 있으면 낯선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기까지도 했다. 가령 “죄송합니다만 10센트만 빌려주십시오. 돈을 다 써버려서...”라는 요청에 38%가 돈을 주었으며, “지갑을 잃어버려서 그러는데, 10센트만 빌려 주십시오”라는 요청에는 무려 72%가 응했다. 이러한 결과는 키티양 사건 당시의 철저한 방관과는 완벽하게 상충되는 것이었다.


라타네는 또 다른 실험에서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긴급사태를 만들어 원조행동에 대한 분석을 시도했다.  라타네는 오히려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도와주지 않은 것은 아닐까라는 시각에서 이 문제에 접근했다.


라타네의 대표적인 실험

라타네의 실험은 다음과 같았다. 우선 실험 대상자는 18세에서 22세까지의 학생이었다. 학생들은 시장조사회사의 한 방으로 오게 되었다. 게임과 퍼즐에 관한 설문지에 응답하기 위해서이다. 학생들이 도착하면 여직원이 설문지 기입을 부탁했다. 그들이 설문지를 기입하고 있는 동안 여직원은 “저는 옆방에 있겠습니다”라며 어코디언 커튼을 열고 옆방으로 갔다. 들려오는 소리로 보아 여직원은 서류를 정리하고 있는 듯했다.


이 단계에서 피험자들은 다음의 네 그룹으로 나뉘어졌다..


단독조건 : 대학생이 방문하여 혼자서 설문지를 기입하는 조건


협력자 조건 : 학생을 가장한 실험협력자와 같이 설문지를 기입하는 조건이다. 실험협력자는 앞으로 진행되는 사태에 대하여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시종 방관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타인 조건:  전혀 처음 보는 피험자 둘이 각각 설문지를 기입하는 조건


친구조건: 서로 친구 사이인 두 명의 피험자가 방문하여 설문지를 기입하는 조건


이러한 조건에 할당된 학생들이 설문지를 기입하고 있으면, 옆방에서는 여직원이 위에 있는 물건을 꺼내려 의자에 오르다 비명소리와 함께 큰 소리를 내면서 쓰러진다. 여성은 고통에 겨워 “아아 다리가.. 다리가 움직이지 않네. 발목이.... 이게 안 치워진다.”라며 신음소리를 낸다. 물론 이 모든 소리는 테이프에 녹음된 것이다.


모든 실험자에게 이 소리를 들려준 뒤 피험자가 원조행동에 나서는 비율, 원조행동에 나서기까지의 시간 등을 측정하는 것이 이 실험의 목적였다. 만일 130초까지 피험자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여직원이 “밖으로 가봐야지.”라고 말하며 쩔뚝거리며 반대쪽문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리도록 되어 있었다.


사람이 많으면 안 도와준다

실험 결과는 어떠했을까? 피험자의 옆에 아무도 없는 단독자 조건에서는 약 70% 정도의 비율로 원조행동이 이루어졌지만 무관심한 협력자가 있는 조건에서는 7% 정도가 원조행동에 나섰을 뿐이다.


왜 사람이 많으면 원조행동이 이루어지기 힘든 것일까? 여기에 대하여 라타네는 다음과 같은 2단계모델을 제시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존재하면 사태의 긴급성을 해석하는 데에 사회적인 영향을 주며 그 때문에 책임감의 분산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사회적 영향의 프로세스


어떠한 사태가 벌어졌을 때 그것이 정말로 원조를 필요로 할 만큼 절박한가를 명확하게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이 실험에서도 소리만 들릴 뿐이어서 사태의 긴급성 판단에는 해석의 여지가 많았다. 이러한 경우, 사람들은 함께 있는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보고 상황을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 역시 다를 바 없다. 상대방의 반응을 추측하여 판단의 재료로 삼는 것이다.


문제는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상대방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상대방 역시 나의 반응을 보고 상황의 판단을 하고 있다. 이러다보면 실제로는 다른 사람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판단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얼핏 보기에는 사태를 긴급하게 여기지 않고 있는 것처럼 비쳐질 수가 있다. 그러다보면 자신도 덩달아 사태의 긴급성을 낮게 평가하기 쉬운 것이다. 사람이란 이런 것이다.


이것은 원조행동 뿐 아니라, 피난행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가령 일본에서는 상당히 커다란 지진이 일어나도 다른 이웃들이 피난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면 피난하지를 않는다. 피하라는 대피방송이 있었음에도 집에 그대로 머무르고 있었던 사례가 다수 보고되어 있다. 또한 우리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건물에서 화재경보가 울려도, 주위 사람들이 별 다른 심각한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곤 한다. 물론 이러한 피난행동에서는 일상성의 편견이라는 또 다른 착각이 작용하고 있기는 하다.


책임감분산의 프로세스


더욱이 사태를 긴급하다고 판단했더라도 다른 사람이 있으면 책임감의 분산이 일어난다. 내가 안하더라도 누군가가 하겠지라고 생각하는 현상이다. 이것은 타인조건과 친구조건을 비교해보면 분명해진다. 친구간의 사이가 전혀 모르는 사이보다는 책임감의 분산이 일어나기 어렵다. 실험 결과 역시 이러한 사실을 지지해주고 있었다.


친구조건에서는 타인조건에서보다 원조행동의 억제가 덜 일어났던 것이다. 친구조건에서는 70% 정도의 원조행동이 일어났고 원조행동이 개시된 시각은 평균 36초 경과했을 때였다. 처음에야 어리둥절했겠지만 곧 의기투합하여 구하려 나섰던 것이다.

반면 타인 조건에서는 누적 원조행동률은 40%대에 불과했고 개시된 시각도 평균 130초 지나서였다. 두 조건 사이에서는 통계적으로 의미있는 차이가 확인되었다. 결국 타인 조건에서는 서로가 상대방이 먼저 하겠지 하면서 우물쭈물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로 바라보다 누군가가 심각한 사인을 보냈을 때나 원조행동에 나섰고, 그렇지 않을 경우는 서로 바라만 보다 만 것이다.


라타네는 이러한 책임감의 분산이야말로 사람들이 방관자로 남을 수밖에 없는 원인이라고 보았다. 라타네는 후속연구를 통하여 원조행동 개입의 5단계라는 식으로 점점 연구를 확대시켰다. 이 연구를 출발점으로 하여 사회적 태만이라든지, social impact 이론이 탄생하기도 했다. 라타네 이후도 원조행동에 대한 연구는 향사회적 행동에 관한 연구로 확대되면서 보다 정교해져 왔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지금은 심리학과 백본은 다르지만 진화생물학이라든지 뇌과학 쪽에서도 원조행동과 관련된 연구는 대단히 활발하다.



PS


지난번 낙타님이 댓글에서 소개해 주신대로 키티양 사건을 놓고 2002년부터 재미있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전혀 몰랐습니다. 뉴욕타임즈의 기사가 너무나 과장되었다는 것이 포인트인데요. 이웃들의 인터뷰, 재판기록 등을 상세히 조사하여 키티사건이 일어났던 지역의 De May라는 변호사가 뉴욕타임즈의 기사를 반박하고 있습니다.


우선 뉴욕타임즈의 원기사를 읽어보시고, 이 사이트를 방문하시면 참고가 됩니다.


그리고 여기는 “Kitty, 40 Years Later"라는 2004년 기사로 뉴욕타임즈의 반응입니다. 노련하다면 노련하고, 교묘하다면 교묘합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American Heritage Magazine도 껴듭니다. 여기입니다.


위키피디아에도 상당히 정리가 잘 되있습니다. 위키피디아 요즘 무섭습니다.


De May의 게시판을 보면 다양한 반응이 나타납니다. 한 가지 인상적인 멘트가 있더군요.


“Whoever you are, this was great journalism about shoddy journalism. College students should have to read the original article in the newspapers, and then read your analysis.”


(당신이 누구이든, 이것은 싸구려 저널리즘에 대한 위대한 저널리즘이다. 대학생들은 반드시 원 기사를 먼저 읽고 나서 당신의 분석을 읽었어야 했다..)


뉴욕타임즈를 보고 shoddy journalism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조중동은....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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