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타네의 실험은 상당히 정교하게 디자인되었고, 결과도 만족할만했다. 그래도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키티양 사건과는 달리 실험실의 상황에서는 생사가 걸릴 정도의 위급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키티양 같이 괴한이 흉기를 들고 설쳐대는 상황이라면 책임감의 분산 이외의 다른 요인, 가령 공포감 같은 것도 얼마든지 원조행동을 억제할 수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게 보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사실 잘 훈련된 사람이 아니라면 옆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위급상황에서는 온 몸이 굳는다고 한다, 남을 도와주고 자시고를 따질 상황이 아닌 것이다. 인류는 생사가 걸린 위급상황에서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 생존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또 그런 식으로 인류가 진화해온 결과라고 한다. 요즈음은 뭐든지 진화라고 해야 무식하다는 소리를 안 듣는다.
사회심리학은 총기난사 사건에 대해서는 무식하다
이런 까닭에 이번 조승희군 사건에서 보듯이 단 한명이 수 십 명을 죽일 수 있다. 공포로 모두가 얼어붙어 꼼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생각대로라면 몇 명이 죽을 각오하고 와락 덮쳐버리면 희생이 최소한으로 그칠 수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질 못하는 것이 사람의 생리적 한계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조승희군을 막아서면서 학생들에게 도망치라 말하고 사살된 유태인 교수의 행동은 대단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인체의 생리의 한계를 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터에서 살아났다는 경험이 큰 작용을 했을 것이다,
실험실에서는 공포감을 재현하기가 힘들다. 피험자들에게 극도의 공포감을 환기시키는 실험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러한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사회심리학의 이론이라는 것이 상당히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현실에 대해서 어느 정도까지는 설명을 해주지만 완벽함과는 거리가 대단히 멀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까닭에 이번 조승희 사건에 대해서 사회심리학은 아무런 이야기를 하질 못한다. 사회심리학은 총기난사 사건에 대해서는 대단히 무식한 것이다. 아는 것이 전혀 없다. 물론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실험실에서 총기난사사건과 같은 것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런 것 재현한다고 했다가는 난리난다. 완벽한 독재자가 출현해 마루타부대 같은 것을 만든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실험실에서 완벽한 재현은 고사하고 비슷한 상황 설정조차 이루어지질 않으니 연구의 대상 자체가 되기가 힘들다.
실험이 어렵다면 조사가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이것조차도 대개가 불가능하다. 총기난사사건의 범인들은 대개 자살하거나 총을 맞고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범행 동기나 그 당시의 심리상태에 대해서 정확히 알기가 대단히 어렵다.
우울증환자들은 다 총기난사 하냐?
이렇다보니 추측만 남발할 뿐, 분석이 없다. 총기규제를 하지 않아서라니, 우울증을 앓고 있어서라니, 한국인이라서니 하는 식의 별 말도 되지 않는 기사가 범람하고 있는 것이다.
총 가진 넘들은 다 총기난사하느냐라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우울증 앓는 사람들은 다 총기난사하냐고 물어도 할 말이 없다. 우울증 앓는 한국넘들은 자유롭게 총만 살 수 있다면 다 쏴 죽이냐는 물음에는 더더욱 할 말이 없다. 방아쇠를 당기게 한 최종 요인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 미국사회에서 거론되고 있는 처방이나 대책이 총기난사사건을 막지 못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총기의 자유로운 구입은 제한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총기규제가 능사는 아니다. 그것은 캐나다를 보면 알 수 있다. 칠백만정의 총기가 풀려있는 캐나다에서는 총기사건 자체가 미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드물다. 지금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요인이 분명 있는 것이다.
또한 총기를 규제하면 다른 수단에 매달릴 것은 뻔하다. 그리고 그것은 미국사회가 벌써부터 벌벌 떨고 있는 바이오테러가 되기 쉽다. 바이오테러의 희생자는 몇십명에 그치지 않는다. 수십 만 명이 한 번에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미국사회는 이런 저런 이유를 붙여 총기를 규제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총기난사사건은 앞으로도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우리의 문제는 바로 지역감정이다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에 대해서 사회심리학은 할 말이 없으나, 그 사건으로 보여준 우리사회의 반응에 대해서는 할 말이 있다. 그것은 우리사회가 스테레오타입적인 사고에 빠져있는 정도가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스테레오타입적 사고란 사람을 그가 속한 카테고리나 집단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가장 간단하게 말하면 한국 사람은 좋은 넘, 일본 사람은 나쁜 넘이라고 생각해버리는 사고방식이다. 한국사람 가운데에서도 나쁜 넘도 있고, 일본사람 가운데에서도 좋은 넘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고방식이다. 이러한 카테고리 사고가 꼬마들의 “우리편은 좋은 편, 상대편은 나쁜 편”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에 바탕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 카테고리적인 사고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 못한다. 그것은 인터넷에서 흔히 마주할 수 있는 지역감정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지역감정이야말로 카테고리 사고의 전형이다. 어떻게 한 지역에 사는 수백만의 사람을 똑같은 넘들이라고 한 취급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의 사고방식 자체가 지역감정과 같은 카테고리 사고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과 같은 과잉반응이 나온 것이다. 조승희군 사건으로 미국사람들이 한국인을 조승희와 똑같은 넘이라고 취급하여 보복하거나, 자기들에게 불이익이 올까봐 불안해 했던 것이다. 개눈에는 똥만 보이는 것이다. 결국 이번에 언론이 보여준 치사할 정도의 굴종적인 태도는 변형된 지역감정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또 한번 카테고리 사고가 심화될 수 있는 기회를 눈앞에 두고 있다. 바로 대선이다. 대선이 닥치면 분명히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발언들이 속출할 것이다. 이번 선거에는 딴 것 볼 것 없다. 지역감정 조장하는 넘들을 떨어뜨리면 된다. 모든 넘들이 지역감정 조장하면 어케 하냐고? 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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